민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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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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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여의도



 조명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를 시작하였는데도, 시선은 그 왼편에 자리 잡은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향한다. 머리에는 하얗게 눈발이 내렸고, 동그란 알의 안경이 콧등에 얹혀 있었다. 아마도 바이올린 연주자들 가운데 우두머리 양 그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종종 다른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눈짓으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이제 연주가 시작된다고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연주가 잘 되었다고 안경 속의 눈썹을 초승달 모양으로 모아서 웃음을 만들기도 하였다. 가끔은 다른 연주자나 가수에게도 말을 건네었다. 간주 부분에서 솔로 파트가 시작되면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의 연주에 몰두하다가 간주가 끝날 무렵 가수에게 눈으로 말을 걸어서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피아노 연주자는 바이올린 연주자를 바라보며 연주를 시작해야 하는 부분을 찾았다.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리듬에 의지하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대부분의 곡이 피아노 연주자가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한 곡이었기 때문에 눈앞의 악보는 큰 쓸모를 지니지 못하였다. 손으로는 연주를 하고 몸은 음악에 내맡기며 오른발로는 늘임 페달을 밟고 왼발로는 자신의 기분대로 박자를 맞추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무대에서 공연되는 순간만 해도 벅찬 기분일 텐데, 직접 무대의 일부분이 되어서 공연을 하는 순간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그렇게 음악과 동화되어서 연주를 하는 순간에도 피아노 연주자는 무대에 있는 다른 연주자들을 잊지 않았다. 기타 음과 같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피아노 연주자는 기타 연주자에게 고갯짓을 하였다.

 기타 연주자는 왼손으로 미리 코드를 잡고 있다가 피아노 연주자의 끄덕임과 함께 줄을 튕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기타 연주자는 주로 듣고 있는 편에 속하였다. 피아노 연주자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자와도 눈을 마주쳐서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객석을 바라보고 노래를 하는 가수의 입술 모양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입술이 음을 만들기 위해서 벌어지면 그제야 자신의 기타로 시선을 옮기고 연주를 이어나갔다. 연주를 하는 중간 중간 기타 연주자는 슬며시 웃곤 하였다. 여러 곡들을 연주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부분은 정말 선율이 좋다며 웃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넋을 잃고서 자신을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을 것이 더 진실일 것 같았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하나같은 표정으로 웃음 짓고 있었다. 음악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혼자 라디오에서 음악을 듣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관객들이 웃음 지었던 것은 무대 위 연주자들이 주고받았던 무엇인가가 관객들에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히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절친한 사이에서도 지키는 예의나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공감 혹은 남을 아껴주는 배려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좋은 것들을 주고받는 무대 위 연주자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러한 공기 중에서 호흡하면서, 세상에서 종종 상처를 주고받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깊은 숨을 들여 마셨을 것이다. 어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오늘은 좋은 것을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들이 들이마신 공기 속에 있었을 것도 같았다.

 연주자들에게만 시선을 주다가 한 곡이 끝날 무렵까지도 가수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실은 그녀를 보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인데, 이제야 가수를 바라보니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기다란 음으로 늘여서 부르는 중이었다. 모두 다 행복하면 좋겠다고 웃을 일 많았으면 좋겠다고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노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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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신대방동


"어느 날 오후, 티베트 어린이 마을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농구를 하거나 놀이 기구에 매달려 재잘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에 깊이 감응하며 충만함을 느끼며 걸었다. 아이들과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운동장 한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유치원 과정의 한 아이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게 아닌가? 20여 미터쯤 다가와서야 아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옆집 소남의 아들 델레였다. 델레는 내 품에 펄쩍 뛰어 안겼다. 순간 내 마음 속에 솟구치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소남은 토요일이면 아들을 데려와 함께 놀아 주며 지냈다. 나는 델레가 몹시 귀여워 과자도 사주며 말을 붙여 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델레는 몹시 쑥스러워하며 침대에 얼굴을 묻고 꼼짝하지 않았다. 간지럽혀도 웃기만 할 뿐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운동장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반가웠나 보다. 부모의 이혼으로 새침해 있던 델레는 내 손을 잡고 친구들 앞으로 걸어갔다. 내심 외국인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우리가 껴안는 것을 본 아이들은 델레를 밀쳐 두고 차례차례 나를 껴안기 시작했다. 말이 필요없었다. 한 명 한 명, 왼쪽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누가 그랬던가? 연인은 심장이 있는 왼쪽으로 끌어안는 것이라고. 그 순간 아이들은 내 연인,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이들이 내 심장의 가쁜 고동 소리를 듣고 그 리듬을 오래 기억하기 바랐다. 10여 명의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겼다가 다시 빠져 나가며 밝디밝은 웃음소리를 냈다. 우리는 그 포옹 놀이를 실컷 즐겼다.

 마지막 아이를 안은 다음 일어섰을 때, 나는 휘청거렸다.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30여 년 동안 내 안에 뭉쳐 있던 아짐과 고통, 부정적인 마음이 빠져 나왔다는 것을. 치유의 현기증이었다. 델레를 시작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내 마음의 고름 덩어리를 흡수해 히말라야 너머로 날려 버렸던 것이다. 아이들은 작은 부처님이었다. 운동장을 걷는 동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정희재,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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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보라매초등학교



토요일 11시 45분, 알림장을 적는 일까지 끝마치면 가방을 챙겨서 학교를 나선다.
교문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면 부모의 손을 잡고서 집으로 돌아가고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구가 있다면 친구의 손을 잡고서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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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만화가를 꼽으라면 우선 에이치로 오다, 원피스를 쓰셨다.
다음은 미스루 아다치, 러프와 H2, 일곱빛깔무지개 등을 쓰셨다.
마지막으로 이 분, 그림일기와 손그림 등을 쓰고 있으며,
나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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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서울대학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일은 언제나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두려움과 맞서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며 이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힘든 일은 힘들다는 사실 하나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언젠가 반드시 그만큼의 결실을 틔울 것임을 알고 있다.
두려움과 용기로 내딛는 발걸음을 축복하며.
새로운 봄을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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